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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명상] 둘이 아니요 하나다: 본무자성(本無自性)의 지혜와 마음 치유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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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타인과의 깊은 갈등이나 원치 않는 상황에 직면해 가슴이 가빠지고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라는 원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 자신을 파먹어 들어갑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마음의 번뇌와 사람과의 오해 속에서 깊은 방황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산사에서 접한 불교의 '본무자성(本無自性)'과 '둘이 아니 하나다(不二)'라는 가르침을 몸소 체득하면서, 마음을 옥죄던 괴로움의 사슬을 비로소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1. 본무자성(本無自性): 고정된 괴로움의 실체는 없다 '본무자성'이란 세상 모든 현상과 존재에는 본래부터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나만의 독자적인 성품(自性)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 팔자는 원래 그래", "그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라고 단정 짓곤 합니다. 하지만 찻잔 속에 담긴 물이 찻잔의 형태를 띠다가도, 햇빛을 받으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듯,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꿉니다. 마음속을 가득 채운 고통과 분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절대 변하지 않을 바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여러 인연이 잠시 모여 만들어낸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고정된 자성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지금의 이 괴로움도 결국 인연이 다하면 인과에 따라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비로소 마음의 여백을 얻게 됩니다. 2. 둘이 아니 하나다(不二):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깨달음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이치는 '나'와 '너', '좋음'과 '싫음', '상대'와 '주체'가 결코 둘로 나뉘어 존재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 완전히 격리된...

“당신이 목숨처럼 쥐고 있는 것, 전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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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누구나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고생해서 모은 재산, 어렵게 구축해 놓은 사회적 지위, 혹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까지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내 것'이라 여기며 꼭 쥔 채 살아갑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절집에 들어와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도 한동안은 내 안의 집착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룩해 놓은 소소한 성과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그리고 내가 옳다는 고집을 목숨처럼 붙잡고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찰의 사계절이 바뀌는 것을 수없이 지켜보며,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목숨처럼 움켜쥐고 있던 것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단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붙잡으려 할수록 깊어지는 삶의 괴로움 절을 찾아오시는 많은 신도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변해버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저 사람이 안 그랬는데 변했습니다", "평생 모은 돈이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건강했던 몸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 슬픔과 허망함을 어찌 다 말로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의 본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상 그 자체보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과 현상의 격차에서 발생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말씀하셨습니다. 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봄바람이 불면 비처럼 떨어지듯,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붙잡아 두려 하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마...